GKL 에세이 (춘분을 즈음하여)
봄이 왔습니다.
유난히 지루했던 지난겨울을 보내고 맞이해서 그런지 여느 때 보다 더 반갑습니다.
절기(節氣)상으로 춘분을 며칠 남기지 않은 지금, 많이 따뜻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낮밤의 기온 변화가 심한 때입니다. 오죽하면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도 있을까요? 산책하기 좋은 따뜻한 한낮이라도 그늘에 잠시 있으면 한기가 느껴집니다. 기상예보의 낮 기온만 믿고 길을 나섰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인 때입니다.
“춘래불사춘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이 무렵이 되면 여기저기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원작은 당(唐)나라 사람 동방규가 쓴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라는 시입니다.
한(漢)나라 원제(元帝·BC74~BC33)때 흉노족 족장에게 조공으로 바쳐진 왕소군이라는 절세 미녀의 심정을 그렸습니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带缓 (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
非是为腰身 (몸이 약해진 때문만은 아니리니)
오랑캐의 땅에 끌려와 원치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 그녀의 심정, 그리고 ‘절기’상으론 봄이 됐지만 아직도 춥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내몽고의 풍경.
두 개의 ‘쓸쓸한 봄’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오버랩 됩니다.
흔히들 ‘절기’라고 하면 오래전 중국에서 농경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음력날짜이며 24개의 절기가 있다고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절기에 대해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24절기는 음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24절기는 중국 주(周)나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00천 년 전 중국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춘분은 90°인 날이 하지, 180°인 날이 추분, 270°인 날이 동지가 됩니다. 그리고 입춘(立春)에서 곡우(穀雨) 사이를 봄, 입하(立夏)에서 대서(大暑) 사이를 여름, 입추(立秋)에서 상강(霜降) 사이를 가을, 입동(立冬)에서 대한(大寒) 사이를 겨울이라 하여 4계절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설명이 잘 이해가 안 가시는 분을 위해 그림으로 보겠습니다.
위 그림처럼 24절기는 음력이 아닌 태양의 기울기 변화 즉 결과적으로 태양력을 기준으로 정해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옛사람들은 번거롭게 태양력과 태음력(정확히 말하면 태음태양력) 둘 다 쓰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와 날짜 계산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달 모양에 따라 15일의 주기를 갖는 음력이 편리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공전주기와 달의 삭망 주기가 다르다보니 1년에 11일의 차가 생깁니다. 이것이 쌓이게 되면 날짜와 계절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농사를 위한 절기는 태양을 기준으로 정해놓고 생활은 달을 기준으로 삼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날짜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19년에 7번의 비율로 윤달을 끼워 넣었습니다.(이를 치윤법이라 합니다.)
혹시 위 그림을 보고 한식, 단오, 초복, 중복, 말복, 칠석은 왜 빠졌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절기가 아닌 우리의 세시(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따른 때. 명절과 절기를 뺀 것을 칭하기도 함)’입니다. 정하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식 -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단오 - 음력 5월 5일, ▲초복 - 하지로부터 세 번째로 돌아오는 경일[60개의 간지 중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 ▲중복 - 하지로부터 네 번째로 돌아오는 경일(초복과 열흘 간격) ▲말복 -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
명절과 24절기 등 주요 세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편의상 명절과 절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세시로 구분하였음
올해도 봄을 즈음하여 많은 이들이 ‘춘래불사춘’을 말했습니다.
제 마음 한 켠에도 몇 년 전부터 봄볕이 들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현재의 시련을 이겨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쁜 기억이 아닌 좋은 경험으로 기억 될 것입니다.
발명가 에디슨의 말입니다.
“마술은 마음속에 있다. 마음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마음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여! 자기 마음속에 마술을 부려 즐겁고 찬란한 하루를 만들어라. ”
어쩌면 봄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마음속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은 언제나 희망입니다.
참고자료
1. 윤경철 저, 『대단한 하늘여행』, 2011
2.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열두달 세시 절기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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