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라이프 (퇴직연금에 관심 가지는 만큼 노후자산이 불어난다!)
딜러인 A씨는 며칠 전 재무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회사에서 퇴직연금을 실시하고 있나요?” “DB형인가요, DC형인가요?” 컨설턴트의 연이은 질문에 A씨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더불어 노후 준비의 핵심 축인 퇴직연금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퇴직연금 가입유무 조차 모드는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글.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
2005년부터 시작된 퇴직연금제도는 현재 많은 회사에서 시행되고 있다. 퇴직연금은 퇴직금 운용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회사와 개인 중에 누가 맡는가에 따라 확정급여형(DB형)과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다.
확정급여형(DB형)은 회사가 금융회사에 퇴직금을 맡겨 관리하다 퇴직 후에 운용실적에 관계없이 확정된 금액을 지급한다. 확정기여형(DC형)은 개인이 직접 퇴직연금 운용상품의 선택이나 변경에 대한 권한을 가진다. 퇴직연금이 적립되는 동안 어떤 자산들을 바구니에 담고 적절한 시점에 변경을 잘하느냐에 따라 55세부터 받게 되는 퇴직급여액이 개인마다 차이가 나게 된다. 직장마다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확정급여형(DB형)을 선택할지 아니면 확정기여형(DC형)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는데, 두 상품 모두 복수로 취급해 직원들의 선택에 맡기는 회사도 있다.
확정급여형(DB형)은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니 회사의 운용담당자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 담당자와 잘 상의해서 운용상품을 선택하거나 변경하면 된다. 개인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확정기여형(DC형)은 개인이 선택한 운용상품에 따라 나중에 지급받는 퇴직급여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최초 상품선택이나 중도에 상품변경을 잘 해야 한다. 회사 규모가 큰 곳은 금융회사에서 찾아와 퇴직연금 제도나 퇴직금 운용상품을 직원들에게 잘 이해시키고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니 큰 문제가 없다.
반면에 소규모 회사는 퇴직금 담당자가 퇴직연금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금융회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전 정보제공 없이 퇴직금 운용상품을 선택하라고 해서 아무거나 고르고 적절한 시점에 상품 변경을 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나중에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빈번하다. 개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퇴직연금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대신 신경 써 줄 사람은 없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안정적이고 급여가 꾸준히 오르면서 개인이 자산운용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으면 확정급여형(DB형)을 많이 선택한다. 회사의 재정상황과 임금체계가 불안정하면서 개인이 자산 운용에 대한 경험이 많아 퇴직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해서 불리고 싶은 경우는 확정기여형(DC형)을 선호한다.
똑같은 금액을 20년 동안 굴릴 때 상품 선택에 따라 퇴직연금액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수익률 1%의 차이는 수익의 1.47배를, 2%의 차이는 2.05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운용기간이 30년이라면 차이는 더 크게 난다. 1%의 차이일 때 수익의 1.57배, 2%일 때는 2.32배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세 사람이 30년 동안 퇴직금을 굴려 1억 원이 만들어졌는데 한 사람은 그냥 1억 원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1억5,700만원을, 나머지 한 사람은 2억3,200만원을 받게 되니 퇴직금운용상품 선택을 제대로 안 한 대가치고는 그 결과가 엄청나다.
이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퇴직금 운용상품을 제대로 선택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퇴직금 받을 때 남들보다 적게 받는다고 가입 당시의 퇴직금 담당자를 원망해도 소용없다. 그도 이미 회사를 그만두고 형편없는 퇴직급여를 받으면서 ‘그 때 제대로 알아보고 잘 선택할 걸’ 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퇴직연금에 처음 가입할 때 퇴직운용상품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처음 상품 선택이 퇴직금을 굴리는 20~30년 동안을 좌우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현상유지편향’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휘둘리게 된다. (현상유지편향은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편향적 사고를 말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성립된 행동을 특별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퇴직연금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최소 1년마다 운용성과를 점검하면서 상품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변경해야 효과적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관리할 수 있다. 이때 처음에 선택한 상품을 변경하려면 이 현상유지편향이 발목을 잡는다. 최초 가입시점에 잘못 선택한 퇴직금 운용상품이 항상 기준이 된다. 변경해도 그 기준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 나 같은 전문가가 마음에 불을 지를 정도의 충격을 주지 않는 한 처음의 선택을 변경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분들에게 숙제를 드리겠다. 지금 내가 가입한 퇴직연금이 확정급여형(DB형)인지 확정기여형(DC형)인지 적어보자. 그 다음에는 내 퇴직연금의 운용상품 포트폴리오를 적어보라. 자신 있게 적었는가? 아마 그런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잘 모르겠으면 오늘 당장 회사담당자에게 물어봐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해보고 포트폴리오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체크해봐라. 문제가 있다면 내일 당장 변경해라. 잘 모르겠으면 전문가를 찾아 문의하라. 퇴직금에 들어가는 당신 돈의 규모는 퇴직할 때까지 쌓아 놓으면 다른 금융자산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현상유지편향에 빠져 당신의 소중한 돈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가입한 퇴직연금의 유형이 무엇인줄 명확하게 알아라
최소한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이 무슨 유형인지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 확인해봐서 확정급여형(DB형) 같으면 회사에서 알아서 잘 관리해주니 신경 안 써도 된다. 하지만 회사에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퇴직자산을 불리고 싶다면 확정기여형(DC형)으로 변경하는 것도 고민해보자. 앞으로 20~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할 사람이라면 퇴직연금계좌에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잘 관리해 수익률을 1%라도 높이려고 애를 써야 한다. 자신의 퇴직금을 방치한 사람과 관리한 사람의 희비는 퇴직급여를 받는 55세에 결정된다.
둘째, 상품을 선택할 때 나이에 따라 공격자산 : 안전자산 비율을 변경해라
20~30대 직장인들은 주식형 펀드 같은 공격형 자산의 비중을 높이고 정기예금이나 MMF 같은 안전자산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40대에 접어들면 공격자산을 줄이면서 안전자산의 비율을 높이다가 50대가 되면 안전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잘 유지하다가 55세부터 퇴직연금을 받으면 된다. 퇴직연금은 장기간 시간을 분산해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기에 안전자산에 너무 집착하면 수익률이 안 좋아지니 젊을 때는 다소 공격적으로 운용상품을 구성하는 게 좋고 연금 받을 시기가 다가오면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하는 게 좋다.
셋째, 퇴직할 때 절대 일시금으로 찾지 말 것, 다 날아간다
확정급여형이든 확정기여형이든 55세 연금 개시 전에 퇴직하면 퇴직연금을 IRP계좌(개인형 퇴직연금계좌)로 수령해 연금 개시 전까지 계속 운용할 수 있다. 퇴직할 때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찾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소득 없는 노후를 대비해 강제로 묶어 놓아야 한다.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지 않고 그 돈을 일시금으로 찾으면 그 돈은 연기처럼 사라지거나 노후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 빈곤한 노후를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가에서 퇴직연금제도를 만들고 세제 혜택을 주면서 쉽게 찾아 쓰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의 노후준비가 부실한 것을 걱정해서이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축되는 3층 보장 장치는 절대 훼손되면 안 된다. 소득 없는 노후를 대비해 현재가치로 월 2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퇴직연금을 일시불로 찾아 사업이나 투자를 하거나 노후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다 다 써버리면 노후가 상당히 비참해질 수 있다.
넷째, 최소한 퇴직금 운용 상품에 대해서는 공부해라
금융회사마다 제시하는 퇴직연금 운용상품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정기예금, MMF, 적립식펀드를 이용해 상품을 구성한다. 이때 안전하다고 정기예금만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금이 보장된다고 무조건 안전한 게 아니다. 원금을 보장하지만 낮은 수익률로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 위험을 피해갈 수 없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원금손실 가능성은 있지만 초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인 적립식 펀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한다.
그런데 적립식 펀드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 운용상품으로 적립식 펀드를 선택하는 게 쉽지 않다. 적립식펀드의 장점과 단점, 위험, 상품 선택 요령, 주식형펀드와 채권형 펀드의 차이 등 꼭 필요한 내용만 공부하면 된다. 적립식펀드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재테크 책을 한 권 구해 읽든지 펀드상품 관련 강좌를 찾아 한두 번 참석해보는 것만으로도 필요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알아야 내 소중한 돈을 잘 관리하고 불릴 수 있다.
다섯째, 회사 담당자에게 자세히 묻고 해결이 안 되면 금융회사 담당자에게 직접 문의하라.
퇴직연금에 대해 본인조차 잘 모르는 퇴직연금 담당자가 있을 수 있다. 회사 담당자가 잘 모르면 금융회사 담당자에게 요청해 직원들을 모아놓고 교육시키면 된다. 그런데 성의 없이 운용지시서만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직원들이 관련 내용을 습득했든 못했든 선택한 지시서를 돌려받아 금융회사 담당자에게 넘기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담당자도 적지 않다.
그 이후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담당자 본인은 물론 회사원 전체의 소중한 퇴직연금을 갉아먹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우선은 회사담당자를 찾아가서 모르는 내용을 직접 묻고 금융회사 담당자의 교육을 요청해라. 해결이 안 되면 금융회사 담당자의 연락처를 물어 직접 문의하면 된다. 금융회사 담당자가 친절하게 모르는 것을 잘 가르쳐 줄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20~30년 간 퇴직연금에 불입되는 금액은 상당히 큰돈이다. 이를 잘 운용해 1% 수익을 더 내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명심하자. 이미 잘 모르고 포트폴리오를 짰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아보고 바로잡아야 한다.
2015년 귀속분 연말정산부터 퇴직연금 불입액은 연금저축 불입액과 합산해 연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2014년 귀속분 연말정산에 대해 직장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세액공제 비율을 현행 12%에서 15%로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에서 불입해주는 퇴직연금 불입액은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개인이 추가로 불입하는 경우에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확정기여형(DC형)은 별다른 계좌를 만들 필요 없이 현재 퇴직계좌에 추가로 불입하면 되지만 확정급여형(DB형) 가입자는 개인퇴직계좌인 IRP계좌를 별도로 만들어 불입해야한다.
20~30대 직장인처럼 한창 결혼자금을 만들어야하고 주택자금이나 자녀교육자금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세액공제를 받는 것에만 집중하다 낭패를 볼 수 있다. 55세에나 수령할 수 있는 퇴직연금을 공제 한도까지 불입하는 것이 목돈 쓸 일이 많은 젊은 직장인의 자금흐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목돈이 필요해서 해지하게 되면 세액공제 받은 것을 다 토해내야 하므로 필요자금과 돈 쓸 시기를 감안해 적절한 금액으로 불입액을 결정해야한다. 40~50대 직장인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고 노후준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에 연금저축과 합해 연간 700만원 한도까지 불입해 세액공제를 받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세액공제율이 15%로 확정되면 700만원을 불입할 때 1,155,000원을 환급받을 수 있고(연 수익률 16.5%) 퇴직연금 수익률에 따라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만한 선택이 없으리라 여겨진다.
글쓴이 이천
재무 설계 전문기업인 (주)희망재무설계의 대표로, 신입사원부터 기업인, 변호사, 의사까지 약 1,000명의 재무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내 통장 사용설명서> <왜 내 월급은 통장을 스쳐가는 걸까?> <내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수업-재테크>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