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L 에세이 (‘환상의 섬’ 마요르카에 가다)
바르셀로나의 이곳저곳도 즐겨보았겠다, 이젠 뜨거운 태양 아래 넘실거리는 지중해를 보러갈 차례다. 바르셀로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약 50분 정도 이동하면 스페인령 발레아레스제도에 다다른다. 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 서부에 위치한 ‘마요르카’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EDITOR & PHOTO 신유리 사내기자
마요르카는 유럽인들이 손꼽는 지중해의 대표 휴양지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스페인이나 파리와 패키지로 묶어 이 섬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추세다. 마요르카 섬에는 스페인 왕족들이 전통적으로 여름휴가를 보내던 별장이 많다. 마요네즈가 탄생한 곳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또한 폐결핵을 앓던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요양하며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한 곳이기도 하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그들의 삶을 상상하며 빗방울 전주곡을 감상 중이다. 즐거운 여행기를 쓰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곡이 너무나도 우울하다. 내겐 천국과 같던 마요르카였지만, 춥고 아팠던 그때의 쇼팽에겐 마요르카는 서글픈 곳이었을 것이다.
▲ (왼쪽) 마요르카 산길 드라이브를 하며 만났던 절경.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하늘과 맞닿은 푸르른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감동스러움에 심장도 쿵하고 내려앉았다.
마요르카로 향하던 날, 나와 내 친구는 새벽 같이 일어났다. 지나치게 이른 시각에 항공편을 예약해 둔 탓이다. 간신히 씻고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유럽 저가 항공인 라이언에어를 이용했다. 재미있었던 건 승객들이 비행기에 타고 내리는 모습이었다. 한 게이트에서 탑승객들이 우르르 나오면 바로 그 게이트로 새로운 탑승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마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
▲ 탑승 게이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착륙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내린다.
잠깐의 정리 후 다음 승객들이 탑승하는 시스템. 너무나도 간단하고 효율적인(?) 절차에 살짝 불안함이 엄습했던 우리는 그날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비행기에 탑승 후 안전벨트를 조였다. 기장은 ‘엄청 빠른 속도로’ 스페인어와 영어로 기내방송을 시작했다. 드디어 이륙! 경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건 아니었지만 진동과 소음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다. 다행히 부족했던 수면시간 덕에 이내 잠이 들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기내 안에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고 박수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독특한 것은 다음 날,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사람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착륙을 기뻐했다!)
마요르카에 도착한 후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운전을 할 수 있다던 친구를 믿고 렌트카를 예약했는데, 친구가 국제 면허증을 발급을 까맣게 잊었다는 것이다. 렌트카 예약 확인증에 국제 면허증 필수라고 적혀있었다. ‘포기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은 우리나라 면허증으로도 운전이 가능한지 물어나 보자며 당차게 이동했다. 마요르카까지 와서 호텔에서만 놀다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 (왼쪽) 한가로이 뻥 뚫린 마요르카의 도로. 시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높은 건물을 거의 볼 수 없다.
묘목을 심어둔 널따란 농장들과 작은 풍차가 많았던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렌트카 직원이 국내 면허증도 상관없다며 차키를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우리는 귀여운 자동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길은 제법 한가로웠고 콧노래가 절로 새어 나왔다. 체크인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지만, 친절한 호텔 직원 덕분에 미리 객실을 배정받아 짐을 풀 수 있었다. 객실에서는 근사한 호텔 수영장과 프라이빗 비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섬 곳곳에 히든비치가 200개도 넘게 있다는 마요르카 아닌가! 우리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외국인들의 SNS에서 발견한 주소를 찍고 구글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갔다.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 거의 모든 사거리마다 있었던 로터리. 인간 내비게이터였던 내가 마요르카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바로 “동그랗게 돌아서 직진!!!” 이었다.
마요르카 도로에는 로터리가 정말 많았다. 면허가 없는 나는 로터리라는 명칭도 마요르카에서 친구에게 배웠다. 야자수만 가득하지 않을까 상상했었는데 예상 외로 침엽수와 활엽수가 많았다. 꽃나무와 선인장도 있었고, 알로에도 많았다. 사이사이에 정체모를 작은 동물들도 뛰어 다녔다. 좀 웃기지만 문득문득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친구와 나는 미국의 텍사스가 바로 이런 느낌일 거라며 감탄했다. (가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
Cala Mondrago는 마요르카 섬의 동쪽에 위치한 해변이다. 몬드라고 자연공원에 유료 주차를 하고 해변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사실 바닷가 바로 앞 길가에 주차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해변에 다다르니 새파란 바닷물이 눈을 먼저 사로잡았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온 관광객도 많았고 근사한 몸매의 커플들도 보였다. 토플리스(Topless)로 태닝하고 있는 언니들(?)도 많았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놀랐다. (참고로 마요르카행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여행하는 이틀 동안 동양인은 우리를 빼곤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마요르카의 히든비치는 만처럼 육지 쪽으로 굴곡 진 곳에 형성되어 있었다. 짧은 문장으로는 쉽게 표현하기 어려웠던 맑고 아름다운 청록빛깔의 지중해. 해변은 물론 제법 깊은 곳에서도 남녀노소를 불문, 자유롭게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해변을 두르고 있는 절벽 위 평평한 곳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깜빡 졸기도 하는 등 한낮 바닷가에서 여유를 즐겼다. 결국 해가 질 무렵에서야 참지 못하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바닷물은 너무 짰고 생각보다 꽤 깊었다. 얼마 나가지도 않았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초조해졌다. 그런 내 곁에서 작은 아이들은 튜브도 없이, 어른도 없이 수영하며 놀고 있었다. 심지어는 계속 물을 먹는 나를 보며 답답했는지, 따라 해 보라며 수영법을 알려주던 아이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떠나간 그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동쪽에 있는 바닷가를 가봤으니 북쪽으로도 가보자며 선택한 곳이 Cala de Deya이다. 마요르카는 길이 좁아 경차가 이동하기 편하다는 정보에 의거해 소형차를 렌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해변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어렵고 무서웠다. 남쪽 끝에 위치한 우리 호텔에서 북서쪽에 자리 잡은 이 해변까지는 구글 지도상 3~40분여 정도라고 찍혔었다. 하지만 산을 넘어야 했음을 그 누가 알았을까. 산길이 굉장히 구불구불하고, 급커브가 많으며, 옆은 낭떠러지 절벽에, 반사경도 없는 위험한 길이 될 것이란 걸, 우리는 알지 못했다.
▲ Cala de Deya로 가는 길을 너무도 아름다웠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지만 이는 단지 시작, 그 첫인상에 불과하였을 뿐... 도로의 폭과 커브의 각도는 점점 더 좁아졌으며 낭떠러지 옆으로는 안전난간이 없는 곳도 많았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던 드라이브였다.
잔뜩 긴장한 친구 곁에서 나라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커브를 돌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라도 만나면 우리는 너무 놀라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다. 상대편 운전자도 덩달아 놀라 “무조건 조심히 운전하라”며 걱정해 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 돌아가자니 온 길이 허무하고 나아가자니 너무도 두려웠던 드라이브였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면 그동안의 불안함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꿈같았던 마요르카의 스팟들.
산 위에서 내려다보던 지중해의 푸른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경계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바다 같고 바다가 하늘같던 신비스런 풍경. 게다가 어느 순간 눈앞에 갑자기 펼쳐지는 산과 산 사이에 숨어있는 마을. 그 풍경은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더 나아가, 폼페이나 아틀란티스를 발견한 건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발데모사’라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힘들던 여정에서 우연찮게 건진 최고의 수확이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해변은 Cala Mondrago들의 작은 버전 같았다. 해수욕보다는 바다 위 절벽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정경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 우연히 발견한 발데모사. 처음 봤을 때, 우리는 동시에 아틀란티스를 떠올렸다.
산 속에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마을의 풍경은 “우리 지금 살아있는 거 맞지?”라고 서로 확인했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발데모사. 있는지도 몰랐던, 해안가를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마을. 하지만 마요르카 여행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했던, 가장 기억에 남은 마을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야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이름을 찾아 검색해 보았는데, 바로 이곳이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머물던 마을이란다.
▲ (왼쪽) 예민하게 운전하던 도중이었음에도 “여기!!! 멈춰줘!!!”라고 소리 질렀을 만큼 아름다웠던 길. (오른쪽) 발데모사에서는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많이 팔고 있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엽서는 물론, 실제 드레스 천이 덧대어진 플라멩코 엽서도 있었다. 표정들이 하나같이 생기 넘쳤다.
쇼팽과 상드의 요양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그들이 머물던 곳만큼은 너무도 아기자기하고 정겨웠다. 마음이 괜스레 말랑말랑해졌다. 긴장도 풀린 채 마냥 감성에 빠지게 만든 아름다운 곳이다.
▲ 한가로운 발데모사의 테라스 레스토랑.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이 진 부분에만 옹기종이 모여 늦은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그 속에 자리 잡고 마르게리따 피자와 콜라, 맥주로 간단한 식사를 했다. 맛보다도 분위기에 더욱 취했던 따사로운 낮이었다.
예쁜 바다를 제대로 보고 가자는 욕심에 찾았던 마요르카에서의 이틀은 생각보다 짧았다. 세련된 시내나 볼만한 관광지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꿈처럼 아름답고 동화 같기만 한 섬도 아니었지만, 자꾸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200개라던 히든비치도 더 찾아내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을 가보고도 싶었고, 아기자기하고 귀엽던 골목길들을 마냥 걷고도 싶었다. 운전할 때는 내내 식은땀을 흘려야 했지만 아름답던 해안도로와 산길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바르셀로나와 함께 2015년의 여름을 추억하며 또 다시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