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라 하지만 아직 저녁 무렵 쌀쌀함이 감도는 시기, 빨갛게 달아오른 연탄불은 정겹기 만하다. 제대로 성이 난 연탄불 위에 석쇠를 올리고 꼼장어 한 무더기를 올리자 연기가 확 피어오른다. 곧이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동여매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퇴근 무렵 시장한 차에 불맛 제대로 배어있는 꼼장어가 생각난다면, ‘공평동 꼼장어’만한 곳이 없다.
Editor & Photo 황정호
‘공평동 꼼장어’는 최근 한 방송에 소개되며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입소문이 그 보다 먼저라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다. 오죽하면 외국인 단골도 적지 않을 정도. 그리 크지 않은 가게 내부는 대략 15개의 테이블로 채워져 있다. 실내는 그다지 쾌적하지도 않고, 바로 옆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목청을 높여야 할 정도로 왁자지껄하다. 그럼에도 이 집 앞은 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적어도 오픈하는 오후 4시 30분부터 퇴근 후 한창 사람이 붐비는 밤 8시까지는 ‘1시간은 기다려야 겨우 자리에 앉을 정도’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내부에 손님층은 대부분이 직장인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희끗한 사장님부터 갓 입사한 듯 말쑥한 양복 차림의 앳된 젊은 세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제대로 된 꼼장어 구이의 맛은 역시 세대를 초월하는 듯하다.
일명 ‘깡통집’이라 불리는 곳이 대개는 그렇지만, ‘공평동 꼼장어’의 내부 분위기는 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나름의 인테리어라고 해야 할까? 가게 벽 곳곳에는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 포스터와 딱지들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다.
주문하는 것을 잊고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포스터 하나가 있다. 바로 한창 우리나라에 <영웅본색>열풍이 불었을 당시 CF까지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홍콩배우 주윤발의 모습이다.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을 돌려보니 벽 한쪽에는 한때 어느 집안의 보물 1호로 대접받았을 필름카메라들이 아무렇게 걸려있다. 왠지 1990년대 어느 한 시점에서 멈춘 듯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칠판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한 접시에 1만원’이 눈에 들어온다. 메뉴판에 가격이 쓰여 있지 않아 이상하다 싶더니, 이곳은 모든 메뉴가 1만원으로 통일이다. 단순해서 좋고, 저렴해서 또 좋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그리 문턱이 높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대학생들도 눈에 띈다. 그들이 과연 벽에 붙여진 포스터의 영화를 알기나 할까? 아무려면 어떠랴, 꼼장어 맛만 좋으면 그만인 것을…. 맛보다 멋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 ‘공평동 꼼장어’는 그렇듯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에 입장 1순위와 2순위 쯤 되면 미리 주문을 받는 것도 이집의 특징이다. 당연히 선택은 꼼장어, 자리에 앉으니 인원수에 맞춰 단출한 반찬들과 양념이 차려진다. 한창 시장하던 터라 ‘짬밥’과 ‘벤또’를 함께 시켰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라 찜찜하긴 해도, 어쨌든 ‘벤또’는 그 형태가 대략 연상된다. 하지만 ‘짬밥’의 정체는 쉽사리 파악이 안된다. 가져오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군대에서 흔히 보는 반합에 비빔밥을 담은 것이 ‘짬밥’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군대 시절까지 배려하다니, 추억도 디테일하게 살려주는 곳이 아닐 수 없다. 밥이 나오기 무섭게 다 구워진 꼼장어가 석쇠 위에 자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등장한다. 앉은 지 5분도 안된 무렵이니 속도 또한 합격이다. 워낙 사람들이 기다리는 탓에 입구 화덕에서 미리 구워 나온 것이다. 2004년부터 이 자리에 ‘공평동 꼼장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는 털보 사장님은 ‘꼼장어 맛을 제대로 느끼는 단계별 공략법’을 귀띔해 준다.
대략 순서를 말하자면 우선 양념된 꼼장어를 다른 양념이나 쌈 없이 먹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초장에 찍어서 한 입, 그 다음은 초장과 백김치에 싸서 한 입, 마지막으로 깻잎에 마늘, 백김치를 넣고 한 입 먹는 식이다. 과연 그 맛이 매번 오묘하게 다르다. 대체 꼼장어에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이런 맛이 날까? 비결을 물으니 역시나 예상한 대로 ‘영업비밀’이란다. 굳이 캐물으니 ‘연탄불이 비결 중 하나’라며 마지못해 털어 놓는다.
연탄불이 적당한 온도로 꼼장어를 태우지 않고, 육즙이 빠지지 않게 하면서 맛깔나게 구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꼼장어의 원산지가 국산이 아닌 미국, 캐나다라는 점. 하지만 깡통집에서 질보다 앞서는 것은 저렴한 가격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그 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물 건너 온(?) 꼼장어를 가지고 이정도 맛을 낼 정도면 <Seven Luck House>의 아지트로 삼기에 손색이 없지 않을까?’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