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4년 사상계를 통해 발표된 김승옥 작가의 명작 <무진기행>의 ‘무진’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작가는 오래 전 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 ‘순천만 연안 대대포 앞바다,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여행은 때론 작품과의 대화이자, 그 당대 작가가 느낀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3월이라는 계절감을 느낄 수 없는 순천으로의 여행. 쓸쓸함이 벗과 같이 느껴지는 순간, ‘무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Editor 황정호 & Photo 임영규
서울에서 출발할 때만해도 봄날 햇볕이 완연했는데, 순천으로 들어서는 순간 검은 먹구름이 짙게 낀다. 급기야는 빗줄기까지 약하게 내리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하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겠지만,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읽으며 온 터라 오히려 반가움이 앞섰다. 어떠랴, 순천이 ‘무진’인 것을…. 한창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는 <무진기행>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인공인 ‘나’는 서른셋의 나이로 제약회사 중역자리에 올랐다. 능력이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몇 해 전 남편을 여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주인공의 고향인 ‘무진’은 비루하고 멋없는 공간이자, 참담한 기억으로 얼룩진 곳이다. 그럼에도 그는 삶 속에 특별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무진으로 향한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았다. 며칠 후면 주인공은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의 전무가 될 예정이다. 그는 습관처럼 무진 행을 택했다. 그는 그곳 지인들에게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며, 부러움과 동경의 존재가 돼 있다. 소위 ‘도시에 살고 있는 성공한 인물’이라는 생각은 그 자신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무진은 그런 그 조차도 과거의 그로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공간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하인숙이라는 젊은 음악교사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끝에 함께 밤을 보낸다. 무진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그는 “함께 서울로 가자”고 말하며 과거의 자신과 같은 그녀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상경을 통보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는 순간 그는 다시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말없이 서울로 떠나기 직전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기지만, 이내 찢어버린다. 무진의 경계를 알리는 팻말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는 그렇게 떠나버린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을 통해 간간히 무진의 풍경을 표현했다. 비와 안개, 암울한 느낌의 바닷가, 자살한 여인의 시체와 같이 대체로 암울하고 무채색의 이미지다. 그러나 작가는 그 풍경 속에 스며들어 과거로 회귀하는 주인공을 심리를 묘사하며, 그곳이 주인공에게 애증의 공간이기도 함을 암시한다. 작품이 탄생한지 수십 년이 흘러 무진의 모티브가 된 순천의 풍경도 꽤 많이 변한 듯했다. 서울 어느 도시 못지않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고, 카페와 병원, 꽤 높은 빌딩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순천만에 도달했을 즈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었다.
순천만의 상당 부분이 이제는 ‘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이름 붙여져 있고, 지금 그곳의 주인은 아직 떠나지 않은 철새였다.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갈색 갈대밭과 회백색 하늘만이 공존하는 곳. 발길은 순천만의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로 향했다.
숨 가쁘게 비탈길을 올라 찾아낸 용산 전망대에서는 가슴이 탁 트이는 전경을 볼 수 있다. ‘S’자 형태의 물길 사이로 이곳 사람들은 ‘똥섬’이라 부르는 형태의 습지가 이채롭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작은 원 형태의 갈대밭이 점점 퍼져나가 결국에는 여러 개의 둥근 섬처럼 된 것이라니, 자연이 만든 조화가 놀랍기만 하다. 한참 넋 놓고 그 풍경에 빠져들다가, 다시 화포해변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은 바닷가 마을인 화포 해변은 스산한 날씨 탓에 인적이 드물었다. 물 빠진 갯벌 위 조각배들은 발이 묶여 미처 바다로 가지 못한 물고기처럼 안타깝게 누워 있었다. <무진기행>의 한 배경이 됐던 해변의 풍경 역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비릿한 내음과 함께 불어 온 찬 바다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적어도 이곳의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했다.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일대에 위치한 민속마을.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 안은 듯 한 분지에 자리한 이곳은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공간이다. 실제로 세 개의 마을에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초가집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읍성내 장터 식당에서는 가격대비 놀랍도록 푸짐한 ‘팔진미’ 백반이 차려진다. 팔진미란 낙안 땅에서 나오는 여덟 가지 귀한 재료인 석이버섯, 고사리, 도라지, 더덕, 미나리, 무, 녹두묵, 붕어 등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음식을 말한다.
위치_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문의_ 061-749-8831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일대에 위치한 민속마을.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 안은 듯 한 분지에 자리한 이곳은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공간이다. 실제로 세 개의 마을에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초가집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읍성내 장터 식당에서는 가격대비 놀랍도록 푸짐한 ‘팔진미’ 백반이 차려진다. 팔진미란 낙안 땅에서 나오는 여덟 가지 귀한 재료인 석이버섯, 고사리, 도라지, 더덕, 미나리, 무, 녹두묵, 붕어 등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음식을 말한다.
위치_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문의_ 061-749-8831